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로마 (문단 편집) === 로마와 종교 === 로마는 전기에는 잘 나갔으나 이후 국가가 혼란해지면서 종교관이 바뀌었다. 심지어 [[로마 공화정|공화정]] 말기와 [[원수정|제정 초기]]에는 [[신]]은 이전 [[세대]]의 [[영웅]]이나 자연현상의 위대함을 표현하기 위해 이전 세대가 과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나 있었을 정도였다. 물론 [[3세기의 위기]]와 같이 혼란의 시대에 사람들이 [[종교]]에 매달리는 현상은 언제나 있었지만 나중에는 다른 종교를 제치고 [[그리스도교]]가 커졌다. 전기 [[그리스도교]]의 부흥기에는 [[미트라교]], [[이시스|이시스교]] 등의 신흥 외래종교 역시 유행했고, 그리스도교와 다른 신흥종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. 그리스도교는 당대 로마 제국에 있던 수많은 종교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고, 로마 제국의 쇠퇴 원인은 근본적으로 정치ㆍ사회적인 변화 등이었다. 그리스도교의 융성은 백 번 양보해도 원인이 아닌 결과고, 그리스도교가 로마 멸망의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. 물론 국가가 쇠퇴한다고 종교가 발전한다는 보장도 없다. 그리고 애초에 로마의 쇠퇴도 '[[라벤나 함락|서로마 멸망]]=로마 멸망'으로 바라봤을 때 성립된다.[* 물론, [[로마 제국]] 전체의 역사로 보면 쇠퇴가 맞긴 하다. [[서로마 제국|나라의 서쪽 지역]]이 뭉텅이로 날아가고 [[동로마 제국|동쪽 부분]]만 남은 채로 근 1천 년을 버텨야 했으니, 이걸 쇠퇴라고 안 부르는 게 되레 이상한 것이다.] 로마는 [[수도(행정구역)|수도]]를 [[콘스탄티노폴리스]]로 옮긴 이후 1천 년을 그리스도교 제국으로서 버텼다. [[천도]] 이후의 로마, 다시 말해서 [[동로마 제국]]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[[삼위일체론]], [[성상 파괴주의|성화상 논쟁]], [[동서 교회 대분열]] 같은 기초 그리스도교 지식을 강제 학습하게 될 정도로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[[제국]]이었다.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svmmaapologia.files.wordpress.com/images-102.jpg|width=100%]]}}} || 시대적으로도 그리스도교를 지지하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었는데, 당시 [[로마 황제]]는 사실상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이 줄어든 상태라 [[로마]]의 [[주교]]인 [[교황]]이 [[이민족]]들과 직접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, 침략자인 [[게르만족]]도 종파는 달랐지만 그리스도교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.[* 로마인들은 정통 교리인 [[아타나시우스파]]([[삼위일체론|삼위일체파]])를, 게르만족들은 대부분 [[이단]]인 [[아리우스파]]를 믿었다. 일례로 [[알라리크]]가 로마를 함락시킬 때 [[성당]] 안에 피신한 [[로마 시민]]들을 대상으로 하는 약탈이나 살해 등을 금한 것을 들 수 있다. 이후 성당으로 피한 이들이 안전을 보장받는 선례가 되어 [[기사도]]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도 한다. [[4차 십자군]]이 까인 이유 중 하나로, [[하기아 소피아|성당]]을 약탈했다는 게 들어간다. 그렇지만 [[훈족]]은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, 성당으로 피하든 말든 모조리 죽여버리고 약탈했다. 이런 것 때문에도 훈족은 [[공포]]의 대상이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